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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집’ 설립자 조동진 목사 (11) ] 바울의 집 헌납과 공직 은퇴
2011년 03월 25일 (금) 09:42:38박민균  min@kidok.com

한국 첫 세계선교박물관 짓다

 

  
 ▲ 1960년대 이후 한국을 넘어 제3세계 선교지도자로 우뚝 선 조동진 목사는 40여 년의 리더십을 내려놓고 공식 은퇴했다. 조 목사는 공직을 은퇴하면서 그가 일군 경기도 화성 ‘바울의 집’을 GMS에 기증했다. 1999년 ‘바울의 집 GMS 헌납예배’를 마치고 조동진 목사와 GMS 이사 및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99년 12월 19일은 내가 만75세가 되는 날이었다. 나는 1960년부터 40년 동안 아시아와 제삼세계 선교지도력 개발을 위한 노력하면서, 그 사역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기 위하여 기도했다.

1979년 바울의 집 설립 초기부터 나는 내가 소속한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선교부(현 총회세계선교회ㆍGMS)가 바울의 집을 계승해 줄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1981년, 당시 총회선교부장인 이영수 목사에게 바울의 집 권리 이전을 위한 모든 법적문서를 인계했다. 그리고 총회의 선교훈련원인 MTI를 ‘바울의 집’으로 이전하도록 청원했다. 1982년 바울의 집으로 총회 MTI가 옮겨왔으나, 원장 손영준 목사는 훈련기간 중간에 서울 연희동으로 MTI를 철수시킴으로써 바울의 집과 총회 선교부와의 협력관계는 중단되고 말았다.

나는 75세가 되면서 바울의 집이 가진 모든 유형, 무형의 선교재산을 계승할 바람직한 선교세력으로 총회세계선교회(Global Missions Society: GMS)를 계속 머리에 떠올렸다. 나는 1999년 8월 GMS 서기 이종영 목사와 사무총장 김활영 목사에게 바울의 집을 총회 GMS에 헌납할 것을 제안하고 바울의 집이 수행하는 세계선교의 모든 기능을 계승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또한 바울의 집을 운영하면서 누적된 은행채무를 GMS가 청산해 줄 것을 요청했다. GMS는 이 청원을 GMS 센터건축위원회에서 검토하게 한 후 이사회가 나의 바울의 집 증여의향과 조건을 수락하기로 결의하고, 1999년 9월 15일 나는 바울의 집의 모든 권리와 기능을 GMS에 이전했다.

나는 바울의 집을 GMS에게 증여한 후, 모든 세계선교 조직의 공식 직무로부터 은퇴했다.

1956년 주님의 세계선교를 위한 새로운 소명에 응답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선교학을 공부하기 시작한지 53년 동안 한국과 비서구세계 선교지도력 개발을 위해 일생을 바쳐왔다. 나의 간절한 소원은 이제 GMS 지도자들이 내가 못다 이룬 세계선교 사역을 계속 이끌어나가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GMS는 1999년 10월 바울의 집으로 그 본부를 옮기자마자 내 기대와는 달리 바울의 집이라는 이름을 총회세계선교센터로 바꾸었다. 바울의 집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울의 집 언덕 위 나의 주택은 나의 평생 선교의 동반자인 아내 라신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나의 자녀들의 헌금으로 지었던 우리 가족의 정성이 담긴 <나신복기념관>이다. 이 <나신복기념관>을 조동진 선교역사 연구를 위한 기념관으로 만들 것을 GMS가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그 후 10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8년 9월 제6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종영 박사는 <조동진선교기념관>을 위한 나신복기념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GMS 이사회가 2억 원을 책정하게 함으로써 10년 전 GMS의 약속을 이루어냈다.

<조동진선교기념관>은 2009년 4월에 준공되어 65월 8일 기념관 개관식을 거행하고, 나의 지난 40년 선교의 모든 역사문헌들을 수장할 수장고와 도서실, 연구실, 그리고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한국교회 최초의 세계선교박물관이 되었다. 기념관에는 <조동진선교학연구소>가 입주하여 한국 기독교 세계선교운동 연구의 요람이 되도록 했다.



출처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69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