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계신 나의 주님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우시니까” 2011년 한국 대표 미인으로 뽑혀 2012년 미스유니버스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 미스코리아 이성혜를 만나놓고 처음 내민 질문은 “부모님이 궁금해요”였다. 필자의 가벼운 필설(筆舌)로 ‘좀 특별한’ 한국 대표 미모(美貌)를 먼저 그려내자니 역부족이다 싶기도 하고, 작년 코스타 코리아의 무대에서 사회자가 ‘미스코리아의 아버지’라고 슬쩍 소개한 이선일 장로(울산 소망정형외과 원장, 코스타 강사)도, 그리고 이런 딸을 낳은 가문의 신앙 내력도 궁금하던 터였다. 아니 땐 굴뚝에서 푸른 연기 나겠는가? 월드휴먼브리지는 이성혜가 출석하는 만나교회가 설립한 국제구호단체. 이성혜는 미스코리아 상금 2천만 원 중 1천만 원을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기부했으며, 나머지 1천만 원은 아버지가 후원하는 청년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했다. 3월 16일에는 총리공관에서 김황식 국무총리가 주관한 여수세계박람회 후원기업 CEO 및 경제단체장 오찬간담회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부모님과 집안 이야기부터 들려주시죠. 부모님은 여기에 10년 넘게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계세요. 1년에 2번, 겨울과 여름에 각각 한 달씩 학생들을 모이게 해서 영성수련회와 선교여행을 하는데, 매일 아침 말씀 묵상하고 강의 듣고 성경토론회 하고, 또 전공 영역별로 어떻게 비전을 이뤄갈 수 있을지를 토론해요. 그렇게 훈련받은 청년들이 전 세계적으로 500여 명, 지금은 국내에만 100여 명이니 이제는 해외에 더 많이 나가 있는 거지요. 자라면서 어떻게 신앙교육을 받았습니까?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간 계기는? 청년들, 특히 십대를 위해서 라면 이런 예능미디어에 속한 사람들의 영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하신 거예요. 그래서 아빠는 청년들을 위해, 저는 십대를 위해 쓰임 받는 것이 맞다고 보고 기도해오신 건데요, 그래서 저도 “하나님, 제가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는 게 맞습니까?” 하고 기도했지만 답이 없으셔요. 대신에 받은 응답이 ‘순종’이었어요. 하나님이 제게 원하시는 건 미스코리아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냥 순종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파슨스에 휴학을 하고 돌아왔고요, 우리 가족은 정말 믿음으로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가 그때 순종했기 때문에 지금의 저도 있는 것인데요, 어려서 유학을 갔다고요? 유학생활 하면서 왜 힘들지 않았겠어요? 저를 감싸주기보다 평가하는 사람들뿐이고, 의지할 데라곤 한국인 친구들밖에 없었어요. 자연스레 신앙생활도 주춤하고, 부모님이 전화로 확인하실 땐 말로는 잘하고 있다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보다 친구랑 있는 게 더 좋았거든요. 그런데 기도하는 부모님이 계시면 자녀가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더 힘들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계기가 생기더라고요. 그 많던 친구들이 다 멀어지고 다시 저 혼자 있게 되었어요. 방에서 혼자 쪼그려 울고 집밖에도 안 나가고 있는데, 부모님이 저를 유학 보내실 때 “네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너를 지키신다”라고 주입하듯 말씀하신 게 떠올랐어요. 어려서 암송한 말씀과 방학 때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배운 말씀이 다시 떠오르고요. 제 안에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갈급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를 만지기 시작하셨어요. 하나님은 내가 알던 것처럼 무서운 분도 아니시고, 내가 무얼 잘해야 나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그냥 저 자체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공평하신 하나님, 값없이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거예요. 그러자 제 안에 묶여 있던 것이 풀리기 시작했고, 아팠고 외롭고 힘들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올라가더라고요. 자존감의 문제가 중요했군요. 즐거워하며 누릴 여유는 없었던 거죠. 언제나 더 잘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에 빠져 조금의 잘못도 용납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자존감이 낮아진 거예요. ‘나는 이것밖에 못 해’ 하는 식이죠. 하지만 따뜻한 하나님이 십자가 안에서 저를 구원하시고, 저를 지으신 본래 모습대로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낮아졌던 자존감이 회복되기 시작했던 거예요. 특별히 제가 기쁨을 누리고 감사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면서 온전한 회복을 경험하게 된 건데요, 그것이 바로 디자인 스쿨에 가게 되면서부터였어요. 그때 일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그동안 부모님의 기대치에 맞춘다고 살아왔고, 제 안에 기쁨과 감사도 없이, 저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저를 불태우겠다는 사명감만 있었던 거죠.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쁜 삶이 아니었어요. 예수님이 피 흘리시며 죽기까지 사랑하신 거라면 우리 각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요? 그렇게 존귀하고 한번뿐인 인생인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내가 이제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하고 기도했어요. 그러자 제가 어려서부터 꾸미는 일을 좋아했다는 걸 보게 하셨어요. 그것도 저를 꾸미기보다 남을 꾸며주는 것, 제 손길로 친구가 예뻐지고 행복해 하는 걸 보면 제가 행복해졌던 거예요. 저의 재능은 누군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찾도록 해주는 거였어요. 내가 정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할 일은 패션 디자인인 거예요! 성혜 씨에게 디자인은? 보통 파슨스 같은 데서 공부하면 “이걸 디자인이라고 가져왔어? 이건 쓰레기야!” 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고 정도로 자존감이 무너질 일이 많은데, 저는 이제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게 어때서요? 저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제 의도는 이런 거였는데요.” 당당하게 말하거든요. 미스코리아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 것 같나요?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함께 기도하지요. 이성혜 @inhishand_sh 출처[Cover Story] 미스코리아 이성혜의 기쁨과 감사의 비밀
1204 내 안에 계신 나의 주님
미스코리아 이성혜의 기쁨과 감사의 비밀
그래도 궁금한 대상은 역시 이성혜 본인이다. 미국에서 손꼽는 예술고등학교인 보스턴 예술고등학교에서 음악(바이올린 전공)을 하던 소녀가 의과대학에서 1년을 공부하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에 들어가고 미스코리아 진(眞)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는 세간의 화제였는데, 서구의 3대 디자인 학교 중 하나로 꼽힌다는 파슨스는 ‘루이뷔통’과 ‘캘빈 클라인’의 수석디자이너를 배출한 세계적인 디자인 학교다, 하는 정도로 설명을 짧게 마쳐야 한다. 이 학교에 와서야 부모님이 오래도록 기도하며 권유해온 미스코리아대회에 나갈 결심을 하게 된 것이기에, 그 이면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탓이다.
이성혜는 2011년에 미스코리아 서울 진(眞)과 제55회 미스코리아 진이 되고서 디자인코리아 등 각종 행사에 홍보 대사로 위촉되었다. 2012년에는 여수세계박람회와 한마음혈액원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으며, 월드휴먼브리지(대표이사 김병삼 목사)가 유엔재단과 함께 진행하는 말라리아 퇴치 넷츠고 캠페인의 홍보대사도 맡았다.
1988년 11월 11일생인 이성혜는 키 172센티미터에 수선화를 연상시키는 고운 눈매와 작고 갸름한 얼굴로 동서양의 모든 옷에 어울리는 외모라는 평을 받는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틈틈이 한국무용과 오고무(五鼓舞)를 배웠고 지금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으니, 예능에 남다른 달란트를 받았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런 이성혜를 날마다 아침 생방송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12월에 개국한 채널A(동아일보 종합편성방송)의 ‘김성주의 모닝카페’에서 아나운서 김성주와 함께 스튜디오 MC로 출연하고 있기 때문. 미스코리아 출신 가운데 공식활동 기간중에 방송진행자가 된 경우는 이성혜가 최초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성혜를 만나보자. 글 이한민 사진 주명규
저는 믿음 5대째예요. 증조할아버지는 평양에서 교회 영수(領袖)셨는데 공산군에게 순교당하셨고, 할아버지는 이윤하 목사님이세요. 고모부가 목사님이고 아버지도 신학 공부를 하셨어요. 다만 안수는 받지 않으시고 평생 의사로서 청년 사역을 해오셨어요.
아버지의 모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자”는 건데, 청년들이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다고 생각하셔요. 그래서 청년사역자들과 함께 HRC(소망학당:Hope Retreat Center)를 섬기시는데요, ‘영성과 전문성의 조화를 이룬 21세기 크리스천 리더를 키우는 모임’이에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미국으로 유학 가서 미스코리아대회 나오기까지 주로 미국에서 살았는데요, 겨울방학 때 돌아와도 집에는 거의 있지 못하고 수련회에서 대학생 언니 오빠들하고 같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그 수련회에 가 계시니까요. 덕분에 어려서부터 청년들과 함께 신앙훈련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말씀 암송을 강조하신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부터 하루에 한 구절씩 무조건 암송을 시키셨고요, 암송 못하면 용돈도 없었어요. 주일성수는 기본이고요. 그렇게 믿음으로 사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제 신앙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딸이 이런 대회 나가겠다면 찬성보다 반대를 하실 거예요. 하지만 제 부모님은 다르셨어요. 제가 4살적부터 미스코리아가 될 거라는 비전을 품고 기도해오셨거든요. 그때부터 아빠는 “너는 미스코리아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수도 없이 말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미스코리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거든요.
제가 울산에서 교회 선교원(유치원) 다니던 4살 때 리틀미스코리아대회 나가 1등을 했는데 그때야 드레스 입혀주니까 나갔던 거고, 자라서는 겉모습만으로 평가하고 비교하는 미인대회가 너무 싫다고 생각해서, 또 왜 꼭 미스코리아가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하여간 미스코리아 되라는 아빠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빠는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셨던가 봐요.
제가 미스코리아대회 나가기 몇 해 전인가, 코스타에 모델 장윤주 언니와 함께 참여한 적이 있으셨대요. 아빠는 땀 뻘뻘 흘리며 2시간 넘게 강의했지만 윤주 언니는 그냥 잠깐 나와서 ‘1분 워킹’ 하는데 아이들이 다 ‘쓰러지는’ 걸 보고 영향력의 실체를 실감하신 거죠.
제 성격은 원래 철두철미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앞일을 계산해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공부할 때 결과도 좋아야 하지만 그 공부 과정도 철저하게 계획하는 스타일인 거죠. 그런데 이런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삶에서 볼 수 없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밑바탕부터 내 계획 없이 100퍼센트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모든 과정에서 순종하려면 내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어도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인 목사님 댁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나중에는 기숙사 생활을 계속 했어요. 청소년기에 부모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을 보내니까 혼자
외롭고 힘들어하면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려서 느낀 하나님은 권위적이고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왕이시고 신(神)이신 하나님 이미지뿐이었어요. 신앙적으로 엄격한 교육을 받았기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지만, 그 대신 어려서는 따뜻하고 사랑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이미지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각종 악기와 한국무용을 배웠어요.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악기도 여러 종류를 했는데, 조금 하면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치가 높았어요. 콩쿠르에서 상도 받고 협연할 기회도 가지니까 좋은 선생님도 연결되었지만, 음악을 감사와 즐거움으로 하기보다 부담과 버거움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음악대학 진학을 앞두고 평생 바이올린을 할 생각을 하니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빠처럼 의사가 되어 선교사와 아픈 사람을 돕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의대에 진학하긴 했는데, 그 학교가 제 자존감과는 좀 거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거의 도서관에서만 살면서 아이비리그 의대 준비를 했는데, 교수님들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 떨어진 거예요. “하나님, 왜 입니까? 정직하게 땀 흘리고 공부했는데, 하나님 영광 위해 공부하겠다고 했는데 왜 안 된 걸까요?” 그리고 유학까지 포기할 마음으로 기도원에서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제게 들려주신 음성이 있으셨어요. “나는 네가 행복하길 원한다. 내가 너를 지은 모습 그대로 너를 사랑한단다.” 하나님이 저의 자아와 완벽주의를 깨려고 하신 일인 것을 깨달았어요.
디자이너가 되기로 하면서, “나처럼 자존감 낮고 하나님이 주신 존귀함을 몰랐던 아이들을 위해 저의 재능을 쓰고 싶어요. 제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제 삶을 하나님께 예배로 드릴 수 있다면 이 길을 열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특별한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으면서 혼자 그림 그리고 3대 디자인 학교에 응시했는데, 놀랍게도 디자인 학교는 다 길을 열어주셨어요. 그래서 파슨스에 들어갔고, 하나님이 제게 계획하신 오리지널 디자인을 찾고 나니까 모든 응어리가 다 풀리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어떤 사람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옷에 사람을 맞추기보다 옷이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주는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조차 몰랐던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도록 해주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각자 각자 존귀하고 아름답게 지으신 거니까요.
서울대회 수상소감 때 “여기까지 나를 세우시고 이 모든 것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라고 했다가, 본선 때 혹시 진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에 되면 또 그러지 말아달라는 주최 측 요청을 받았어요. 미스코리아 서울 대표가 본선에서 진이 되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는데요, 저는 본선 때는 더 분명하게 말했거든요. 제가 그 말을 안 한다면 이 대회 나온 목적 자체가 사라지니까요. 제가 사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까요.
미스코리아 대회 기간에 인터뷰할 일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질문은 피하게 하시고 대신 제가 답을 잘할 질문을 받도록 하셨는데, 제 인터뷰 점수가 가장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때 아빠가 500명의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에게 저를 위한 특별 중보기도를 부탁하셨거든요. 엄마에게 기도부탁 문자 보내면 그 즉시 전 세계에 전송되는 거였죠.
올해 제가 미스유니버스대회에 나가는데요, 이제는 더 많은 분들의 기도가 필요해요. 그래서 엄마 아빠와 함께 7천 명의 기도하는 사람들(왕상 19:18)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지금 외국들은 미인대회를 외교와 무역의 필요에 맞게 정치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왜곡된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전 세계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국가에 유익을 가져올 또 하나의 기회인데, 안타깝게도 정부나 기업에서 아무런 관심이나 후원이 없어요. 하지만 저는 갓피플,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의 힘을 믿고 나가요. 하나님이 제게 출애굽기 9장 16절 말씀을 주셨거든요.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