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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캔버스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
<고흐의 하나님> 안재경 지음, 홍성사 펴냄
[240호] 2010년 09월 27일 (월) 16:19:52기김진호  artkee@hanmail.net

  
▲ <고흐의 하나님>, 안재경 지음, 홍성사 펴냄, 324쪽, 1만 2000원
오래전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년)의 자화상과 마주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자화상이 진열된 방에 들어선 순간, 그 공간에 있던 다른 모든 그림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직 그 자화상이 내게로 돌진해 왔다. 꿈틀대는 붓질이 마구 내면을 헤집었다. 다시 보니 그건 그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빈센트였다. 그의 고통과 절망과 외로움이 내게로 전이되었다. 그 그림 주변에서 서성였지만, 그 그림을 오래 응시할 수 없었다.
  
끝없이 계속되는 발작 때문에 파괴되는 심신과 씨름하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 진실한 사랑을 위해 평생 몸부림쳤던 신앙인. 화상?교사?전도사?화가로서 한 번도 성공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 그는 끝내 자기 가슴에 권총을 겨누었다. 빈센트의 비극적인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그의 삶과 예술을 다룬 글을 읽을 때 빈센트의 상처받은 37년 생애를 생각하며 애도의 감정에 휩싸인다. 

<고흐의 하나님>, 이 책은 미술 비평가가 아닌 목회자의 글이다. 글쓴이는 네덜란드 화란교회에서 7년간 나그네로서 사역하면서, 평생 나그네로 살다 간 빈센트를 묵상했다. 이 책은 미술 서적이면서 동시에 묵상집이다. 빈센트의 그림과 글을 매개로 우리 신앙과 삶을 조명하는 문장들은 깊고 기품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좋은 방법은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
  
빈센트는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려고 했다. 성경을 너무도 사랑했고 성경대로 살려고 매달렸다. 전도사 양성 학교에 다니면서 광부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보리나주 탄광촌에 들어갔다. 그는 단지 앵무새처럼 교리만 외워 전하는 전도자가 아니었다. 고난을 당하는 광부들에게 자기 옷과 음식과 돈을 다 내주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스스로 광부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자처했다.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격정적으로 분노하고 저항했다.

그는 매사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매춘부를 측은히 여겨 아이들이 딸린 그녀와 동거했고, 농부들을 그릴 때는 농부와 다를 바 없이 살았다. 또한, 화가들을 위한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자 했다. 그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이 뭉클하다.

“나의 유일한 걱정은 ‘내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 유익을 줄 수 있는가?’이다.” 
  

  
▲ 반 고흐가 남긴 ‘구두 연작’을 일컬어 <고흐의 하나님>의 저자는“땅에 대한 애착과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질박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찬사”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빈센트를 부담스러워했고 감당할 수 없었다. 그가 미쳤다고도 했고 실제로 그는 미쳐 가고 있었다. 미치도록 사랑했고 사랑 때문에 더욱 미쳤다. 그의 비극은 하나님과 이웃을 너무 고지식하고 진지하게 사랑했다는 데 있었다.

빈센트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면서 스무 군데 이상 거처를 옮겼다. 평생 걸었고 흙먼지로 뒤덮인 그의 구두는 언제나 너덜거렸다. 정처 없는 나그네 삶이었다. 그가 전도사로서 행한 첫 설교의 주제도 ‘나그네의 삶’이었고 자신의 설교대로 살았다. 반 고흐가 남긴 ‘구두 연작’을 일컬어 글쓴이는 “땅에 대한 애착과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질박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찬사”라고 했다. 우리도 삶의 속도를 줄이고 빈센트처럼 발바닥으로 살면서 발바닥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릇 온몸 중에서 가장 낮은, 가장 천대받는다고 생각되는 발바닥으로 글을 써야 한다. 발바닥이 아프도록 다니고 난 다음에 글을 써야겠고, 발바닥으로 내려가서 글을 써야겠다. 발바닥으로 쓰는 글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서 쓰는 것이요, 온몸의 무게를 다 받치면서 쓰는 글이다.”

빈센트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란다”(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인상주의가 파리를 휩쓸고 있던 시절에도 그의 시선은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에 집중되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걷고 의 걸으며 외롭고 힘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을 그렸다. 그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던 이유도 그림을 통해서 가난한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고난 받는 종’의 삶을 기꺼이 수용하고 바보 같은 순종을 마다하지 않았던 빈센트를 두고 글쓴이는 말씀을 육화하는 삶이요, 자신만의 성경을 썼다고 했다. 나아가 우리도 고흐처럼 자신의 삶으로 온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할 하나님 말씀의 투명한 속살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움의 원천이자 상처받는 존재였던 고흐의 하나님
  
빈센트를 ‘기독교 미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독교 미술이라는 게 뭘까? 빈센트는 성경 이야기를 직접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상적인 삶의 주제로 신적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보이려고 애썼다. 글쓴이는 빈센트의 캔버스에 하나님의 형상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흔적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기독교적인 주제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예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빈센트야말로 기독교 미술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서 빈센트는 당시 주류 신앙인들과 생각을 달리했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그는 성경의 진리는 시대마다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종교는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좋아했다. 만년의 빈센트가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을 부정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영혼의 더 깊은 곳에서 예수를 찬미하고 진실하게 따르고자 했다. 빈센트에게 있어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원천이었고, 일상 속에 항상 계시는 분이었으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 상처받는 존재였다.

글쓴이의 말처럼, 빈센트의 신학은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나 같은 ‘정통’ 신앙인들을 향하여 뼈아픈 소리를 내지른다.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꿈꾸었던 빈센트의 생애는, 말만 번드르르할 뿐 실제 생활은 온통 맘몬 체제에 물든 우리를 고발한다. ‘자본주의 신학’에 파묻힌 오늘의 기독교에 대한 글쓴이의 쓴소리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하는데 작금의 종교개혁은 교회 안에까지 들어온 자본주의 신학을 몰아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 자본주의가 위로의 방식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위로를 물질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돈을 쥐여 주는 것으로 모든 위로를 대신하려는 것을 본다.” 

기독교가 맘몬 체제와 그토록 쉽게 타협하면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지적되었다. 글쓴이는 사람이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복음의 외피인 종교적인 전통과 믿음의 양태를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나아가 우리나라에 복음이 선포되기 전에 존재하던 다양한 종교들의 역할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보편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서 가장 한국적인, 가장 동양적인 기독교”를 세워 보자고 했다. 

  
 

고흐의 상처를 통해 나의 상처가 치유되다 
  
흔히들 빈센트를 ‘광기의 천재 화가’라고 말하며 신비화하는데, 이는 편협한 생각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영어?불어?네덜란드어?독일어에 능통했던 빈센트의 손에는 성경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의 책이 항상 들려 있었고, 본인 역시 지식인으로서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분명하게 통찰하고 있었다. 종종 발작에 시달리긴 했지만, 삶과 그림을 일치시키기 위해 지적으로 고뇌하고 부단히 실천했던 화가였다. 가난한 사람을 향한 관심과 사랑도 그의 지성과 무관하지 않았다. 빈센트가 남긴 수많은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 사람이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고흐의 하나님>은 고흐에게 덧씌워진 각종 신화를 걷어 내고, 한 사람의 화가이자 진실한 신앙인이었던 고흐의 생애, 그 깊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삶과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고흐의 상처와 우리의 상처가 만나는 지점에서 치유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고흐야말로 ‘상처 입은 치료자’고 고흐의 하나님은 곧 상처 입은 자의 하나님이다. 과연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기김진호 님은 그림을 그리는 초등학교 선생이다. 깡마른 체격에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고들 한다). 하나를 알면 열을 말하는 재주를 가졌지만,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열을 알고도 하나만 말하는 사람이다. 형식적인 일을 싫어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불의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해 잘 나서지만 앞장서는 일은 별로 없다. 짤리면 안 되니까…. 요즘 미술과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아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잘 되면 책으로 만들 생각이다. 동갑내기 아내(교사), 중학생 딸과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다. 

매력적인 인생~

2010.11.10 1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