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09.10.25 17:38:06
2013

잔인한 자비

 

 

나는 이따금씩 하나님께 기도하면서‘심술궂은 사랑’ 또는 ‘잔인한 자비’를 탓하며 투정을 부릴 때가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자비 가운데는 너무나 잔인한 사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KBS에서 방영한 바 있는 대하드라마 ‘대왕세종’에 나오는 한 장면이 기억난다. 우리나라 역사상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은 한글창제 뿐 아니라 해시계 측우기 같은 천문기기와 과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신 분이다. 대왕은 장영실이라는 천민을 발굴하여 양반의 신분과 높은 벼슬까지 주고 그의 재주를 통하여 조선의 월력을 만들고 천문대와 화포를 발명하는 일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중간에 이 기밀이 누설되어 명나라 황제가 알게 되었고 조정에서는 세종의 개혁정책에 반발하던 수구파 신료들이 이를 빌미로 세종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황제가 보낸 특사일행이 조정에 들어와 세종대왕을 윽박지르게 되는데 세종은 자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었다. 명나라 특사는 그러면 장영실을 저희 나라로 데려가게 넘겨 줄 것을 요구했다. 세종은 자기가 모르는 일이라 해 놓고 명나라의 청을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넘겨주면 모든 기밀이 탄로나게 될 것이니 참으로 난처해졌다. 처지를 잘 아는 장영실은 왕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를 명나라에 넘겨주도록 주청을 했다.

 

그 상황에서 세종은 좌중의 허를 찌르는 선언을 한다. 장영실은 국법을 어긴 놈이니 과인이 친국을 하겠다고 팔을 걷어 붙였다. 명나라 특사와 신료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는 앞에서 장영실을 형틀에 올려놓고 곤장을 치게 하였다. 물을 뿌려 가면서 잔인하게 내려치는 바람에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명나라 특사들마저 혀를 내둘렀다. 결국 시체가 된 장영실은 들것에 실려 나가 땅에 묻은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동안 군기감을 비롯해서 장영실과 함께 작업을 했던 신하들은 세종의 그 무자비하고 혹독한 모습에 넌더리가 나서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세종의 과학 발명의 야심도 그렇게 끝난 것으로 되었다.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세종대왕은 신료들을 모아놓고 그동안 극비리에 진행하여 완성을 본 천문기기와 화포를 공개했다. 거기에는 불구자의 몸으로 목발에 의지한 채 현장을 지휘하는 장영실을 만나게 되었다.

‘잔인한 자비’는 적어도 세종대왕과 장영실처럼 확고부동한 신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비장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지고(至高)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최상급 표현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