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0.03.21 16:25:50
1939
 

유익을 주기 위한 시련일 텐데...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라는 글에 “.......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진다.”는 구절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당할 때마다 세상이 끝나버리는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지난해 어떤 성도로부터 마음에 닫는 편지를 받은 것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하나님께서는 때론 뛰게도 하시고 걷게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살다가 어느 날엔가 맘과 생각을 쪼끔 풀어놓았다 싶으면 또다시 채찍질하시며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어느 때는 매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을 지난 뒤에 되돌아보면 그것이 약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때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면 정말 하나님께서는 가혹하신 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오래 전 어느 책에서 본 글이 생각납니다. 어느 젊은 아기 엄마가 추운 겨울날 아기를 업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가는데 추위와 배고픔으로 곧 쓰러지게 되었답니다. 기진하여 곧 쓰러지기 직전에 차가 한 대 옆에 세우더랍니다. 엄마는 희미한 정신으로 차에 오르려고 하는데 차는 매정하게도 아기만 빼앗아 태우고 가 버렸습니다. 엄마는 지금까지 그런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 죽기 살기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차에 가까이 오면 차는 또다시 속력을 내고, 또 다시 멀어지면 천천히 달려서 엄마에게 잡힐 듯이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엄마는 아기를 안 뺏기려고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쫓아갔습니다. 엄마는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였습니다. 엄마가 거의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에야 운전수는 차를 세우고 엄마를 태워 주었습니다. 만일 그 운전수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아기는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엄마는 추운데서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옮겨서 죽었을 것이랍니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나를 위한 것임은 틀림없는데, 뛰라고 하실 때는 힘들고 괴롭고 아파서 죽을 것 같습니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