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손상률 담임목사 2009.09.05 14: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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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되 믿지는 말아라.

 

얼마 전 아들이 70살 된 어머니를 청부살해 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유 아무개라는 할머니는 30년 전 집 앞에 버려진 업둥이를 받아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하며 잘 키워서 결혼을 시키고 좋은 집과 사업장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아들되는 사람은 어머니의 재산을 탐내어 청부살해하고 20억의 유산을 차지했다. 돈에 눈이 멀어 가슴으로 낳고 키워준 어머니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패륜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야 말로 가장 순수한 사랑이며 동물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거짓 없는 사랑은 거짓 없는 믿음과 상통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거기에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사랑은 받는 쪽의 자질이나 태도에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할 수가 있다. 오히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처럼 조건 없이 베풀기만 하면서도 무한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렇지만 믿음은 상대성이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에 마음을 주고 전적으로 신뢰했을 때 그 다음에 돌아오는 배신의 충격은 걷잡을 수 없는 실망과 허탈을 안겨 주고 만다.

 

한평생 성실하게 목회를 하다가 은퇴한 어느 목사님이 후배들에게 당부한다고 하면서 “목사는 진정으로 교인을 사랑하되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 신령하고 덕스러운 목사님의 입에서 어떻게 “교인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내뱉는단 말인가? 정말 믿을 수 없는 대상에게 거짓 없는 사랑을 줄 수가 있을까? 그런 노회함과 능수능란함이 성공적인 목회의 비결이란 말인가? 참으로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참으로 명언이라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는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의 대상은 되지만 믿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다. 낳고 기를 때 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