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09.03.13 14: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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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처지를 서로 바꿔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목회현장에서 여러 경우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자칫 나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여 판단을 그르치면 어찌하나 항상 신경이 쓰이곤 한다.

근래에 우리 교회에서 발행하는 <만세반석>에는 ‘그때 그 사람’이라는 코너로 안미옥 자매의 글이 실려 있다. 필자의 세련된 문장력과 작가적인 기지가 돋보이는 내용인데, 성경에 나오는 특정인을 찾아가 인터뷰 형식으로 그 내면적 심리상태를 묘사한 창작물이다. 최근호에 실린 ‘당신의 3일 동안’이라는 글은 아브라함과 만나서 대담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른 한편 사랑하는 자식을 제 손으로 결박하고 불태워 드려야 하는 비정한 아버지의 모습과 그 과정에 일어나는 그의 인간적 괴로움을 심층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나는 지난호에 실린 ‘가인 그 남자의 아픔과 만나다’는 안미옥 자매의 글을 읽고는 좀 황당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라는 멘트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가인이야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입장을 변호해 주는 글을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작가는 가인이 동생을 쳐죽인 흉악범이고, 또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화신으로 불리지만, 일단은 그도 한 인간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먼저 그의 심리적인 갈등이나 고뇌를 이끌어 내려고 애를 썼다. 이와 같은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사람을 대한다고 할 때 매사를 결과론적으로 단정하기보다 먼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독자를 번제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그 위대한 믿음의 이면에는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들었을 고통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과, 폭력의 원조로 심판의 대상이 된 가인에게도 양심의 가책과 번민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헤아릴 수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신앙과 불신앙의 행동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하나님의 손길 밖에 있을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가인의 그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www.huam.org

음.. 깊다. 쉽다. 좋다.
2009.03.13 18: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