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8.10.12 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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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장군

    사람마다 죽음에 대한 관점은 여러 가지다. 천당을 믿는 사람은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거나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날을 예측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하며 개선장군 같은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어차피 한번 죽는 것인데 슬퍼서 오열하는 진혼곡보다 승리의 행진곡 같은 천국 입성의 축가가 훨씬 더 행복할 것 같다.

    지난주 마산에서 가까운 어른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미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전 국민이 다 아는 일이지만 나는 그분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그분의 생애와 업적을 잘 알기 때문에 느끼는 바 또한 컸던 것이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그분의 사랑을 받았고 목사가 된 후에도 중요한 집안행사 때마다 예배를 인도하며 같이 지낸 시간이 많았다. 임종 직전에 아내와 같이 문병을 가서 주님을 의지하도록 권면하며 기도하던 중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천국에 대한 확신과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향년98세 고령이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살다 가신분이다. 그동안 ‘대통령의 아버지’라는 신분에 있었으나 본인은 권력자로서 행세하기를 싫어했고 여느 촌로와 다름없이 소박하게 사람 냄새를 풍기며 살았던 분이다.

   아들이 1955년제 3대 국회의원으로 진출한 후 대통령이 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으며 뒷바라지를 했고, 결국 그 영광을 같이 누리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은 아들을 대통령으로 키워낸 자랑스러운 아버지요, 가장 큰 후견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 어른의 내면적인 모습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장로님이셨다. 1977년 아들이 총재 경선에 실패하고 그해 5월16일 충현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는데 그때의 소감으로 “내 아들 총재 된 것보다 장로 된 것이 훨씬 자랑스럽다”고 했다. 약관 25세에 국회의원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는 아들에게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보내 줄 테니 다른 사람에게 청탁 받거나 손 벌리는 일은 하지 말거라”고 의미 있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처음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았을 때 자기 땅에다 사재를 들여 교회당을 신축한 일이며, 수많은 신학생들과 교회들을 도우는 등 미담들이 숨겨져 있다. 노년에 이르도록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교회 안에서 누구든지 교역자에게 섭섭하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던 분이다. 그만하면 시골에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자기를 과시하거나 호화롭게 살만도 했지만 전혀 그런 것을 멀리하며 자기의 금도(襟度)를 지킨 분이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진실 되고 겸손하게 살고 간 그분의 생애를 추모할 때 하나님 앞에서 개선장군으로 영접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