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12.02 00:00:00
1962

잘 하는 기도 (4)
- 상황에 알맞은 기도-


여러해 전 해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사 관학교 졸업식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격 조 있고 품위 있는 행사가 되게 하려고 세심한 노력을 하게 된다. 초청된 인사들은 식이 시작되기 15분전까지 입장하여 장내의 아나운서 멘트에 따라서 진행상황에 맞게 행동 요령을 인지하게 한다. 군악대의 팡파르와 함께 대통령 내외분이 입장하게 되고 그때부터 정확히 45분간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이어지는 여러 가지 순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있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군대라는 훈련된 집단이고 또 짜여진 각본에 따라 충분히 예행연습을 거쳐 완벽하게 연출된 행사였음에도 그날 졸업하고 임관하는 생도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뿌듯한 감동과 확실한 긍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교회와 목사님들이 진행하는 예식과 행사들을 비교 하여 생각해 보았다. 흔히들 교회 공동체가 행하는 일들은 모두가 다 믿음으로 하는 것이고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은혜로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의식이나 예배를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시도 때도 없이 입만 벌리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여 준비 없이 적당히 해도 되는 것처럼 예사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우선 그 시간 그 환경에서 자기가 어떤 문제에 중점을 두고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에 유의하고 마음속으로 그 내용을 정리해 나가는 감각이 필요하다.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그 집에 앉자마자 먼저 묵상기도를 하게 된다. 같이 간 사람 중에는 그 자리에서 무슨 기도를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통성기도 하듯이 한참동안 소리를 내어서 기도를 한다. 그 집 식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들먹여 가면서 나름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빌어준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성도가 어느 집을 방문하게 되면 왜 묵도를 하는지, 또 그럴 때는 어떤 기도를 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남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실 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하셨다(마 10:12-13).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평화의 사람(Peace maker)이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안을 주시기 바랍니다”는 정도로 잠깐 묵도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한 곳에서는 생략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상황 판단을 잘못하는 기도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헌금 기도를 인도하는 사람이 설교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기도 하고, 목사의 설교를 잘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성경 암송 대회를 하는 것처럼 신, 구약성경을 모두 들먹이는 경우도 있다. 공중 앞에서 두루 뭉실 얼버무리는 기도도 문제이지만,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들먹이며 적나라하게 하는 기도도 지혜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성도의 기도를 천사가 금향로에 담아서 하나님의 보좌에 올려 드린다고 하였다(계 8:3).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제물이요 그윽한 향기라고 생각할 때 깔끔하고 격조 있는 내용으로 잘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만 될 것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