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10.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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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흰머리, 대머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얼굴의 아름다움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중에도 머리 미용의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신경을 쓴다. 잘 생긴 인물에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있어서 마음껏 멋을 부릴 수 있다면 확실히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상대적으로 젊어서부터 머리가 백발이 되었거나, 그것마저도 없어서 무발의 대머리가 된 사람은 흑발의 검은 머리를 한없이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목사님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검은머리, 흰머리, 대머리에 대한 논쟁이 자주 일어난다. 목사님들 중에는 비교적 흰머리와 대머리가 많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지만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은 서로 제가 잘났다고(?) 우기는 이상한 습성도 있다. 물론 설교할 때는 겸손을 강조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젊어서부터 머리가 희어져 버렸거나 그것도 없어 평생을 민둥숭이로 살아가야 되는 사람은 은연중 그 부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백발이 된 젊은 목사가 염색을 하여 흑발이 된 목사에게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라고 하였거늘”(레 19:32)하고 호통을 친다. 그때 흑발(黑髮)도 백발(白髮)도 아닌 무발(無髮)이 나서면서 “검은머리 위에 흰머리요, 흰머리 위에는 대머리라” 하고 읊조린다.

옛날에는 흰머리나 대머리를 보면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취급을 했지만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이의 백발과 무발이 늘어가는 추세가 되어버렸다. 대머리가 되고 보니 빗질을 안 해도 되는 편리한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남이 모르는 불편함이 여간 아니다. 여름에는 햇볕에 머리가 따가워서 고생이고, 겨울에는 보호막이 없어서 추위를 많이 타게 된다. 사람들은 흰머리 보다 대머리를 더 우습게 보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사진을 찍을 때나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가면 조명발을 잘 받는다거나 눈이 부신다는 등 덕담 비슷한 경우도 있고, 더러는 공산명월(空山明月)이 어쩌고…하면서 조롱하는 소리도 듣는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외손자 녀석이 어렸을 때 나만 보면 어깨 너머로 가서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짚으며 “할아버지 이마는 여~기!” 하고 놀려 주곤 하였다. 아마 어린 아이들 눈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가 신기하거나 이상하게 보이는 듯 했다. 한번은 어린이 집 행사에 기도하기 위해 갔더니 원장이 “얘들아! 오늘은 어린이 집 이사장이신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 주신단다”고 소개를 한 후 다들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게 했다. 내가 막 기도를 시작하려는데 어느 똑똑한 녀석이 눈을 뜬 채로  “그런데 왜 머리가 없어요?”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다들 깔깔거리고 웃는 통에 매우 황당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릴 때의 해원이도 똑 같은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 같다. 이따금 미국에 가면 공항에 마중 나온 해원이와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비며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를 연발한다. 그다음은 어김없이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민둥숭이가 된 나의 머리를 두드리며 “빡빡이 할아버지!” 하면서 놀려대곤 하던 것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놀리는 것은 귀엽기라도 하지만 어른들이 놀리는 것은 별로 기분 좋게 들리지 않는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대머리였는데 아이들이 따라 다니며 “대머리여 올라가라, 올라가라!”하고 놀리다가 곰에게 물려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왕하 2:24). 어찌 보면 대머리는 존경의 대상은 되어도 놀림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