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10.14 00:00:00
1983

하나님도 창피하시겠다

 

     여러해 전 터키 지역으로 성지 순례를 간적이 있었다. 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차례대로 순례하던 중 사데교회의 유적지를 찾아갔다. 거기는 BC 330년대 알렉산더(Alexander)대왕의 명령으로 건축했다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신전의 크기는 길이가 90m, 폭이 50m에 달하고 78개나 되는 돌기둥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높이가18m나 되는 이오니아식 기둥 두 개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웅장했던 신전에 뒤쪽에 매우 초라하고 작은 규모의 사데교회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장 영광스러워야 될 하나님의 모습이 오랜 세월 우상의 전각 밑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그곳을 찾아갔던 순례자들 모두가 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크리스천들의 경우 매우 수치스러운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옛날에는 공부를 많이 하고 입신양명을 하게 되면 본인의 출세나 성공만이 아니라 항상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을 했다. 자식들의 성공이 부모나 조상들의 이름을 드러내주고 가문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식이 못나서 남들에게 없이 여김을 당하거나 또는 부모의 이름을 팔리고 다니며 체통 없는 행동을 하게 되면 가문에 욕을 돌리고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경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드러나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부덕스럽게 될 때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신자가 있고,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어디에나 잘 지어진 교회당 건물들이 있어서 처음 와 보는 사람들은 마치 기독교 국가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외형적 성장에 걸맞을 정도로 교회의 내실과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오래전 제주도에 갔다가 그곳의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권사님 한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분은 남편 되는 분이 안수집사인데 중앙정부의 고급 관료로 지내다가 얼마동안 제주도에서 도지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도청 공무원 부인들과 신우회를 조직하고 도내 여러 마을들을 순회하며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돌보는 등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펴고 있었다. 어느 날 한곳에서 외로운 노인 부부가 사는 집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80이 가까이 된 이들 부부는 끼니를 해결하는 문제나 청소와 빨래까지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데 도와줄만한 가까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생활비는 근처의 어느 암자에서 주지승이 보내 주는 돈으로 연명을 한다고 했다. 그들을 찾아갔던 권사님이 자초지종 사정을 듣고 나서 너무나 기가 막히더라고 한다. 내용인즉 그분들이 젊은 시절 여러 마을을 다니며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우는 등 목회를 했던 전도사 부부였다는 것이다. 그 권사님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하나님도 창피하시겠더라!”고 하였다. 내가 듣기에도 창피한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몇 년 동안 우리교회 여전도회에서 이름도 모르는 노인 부부에게 달마다 일정액의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 권사님의 말이 생각 날 때면 ‘정말 하나님을 창피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하고 자신과 주변을 살펴보곤 한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