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6.10 15: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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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

     2004년 6월초. 본 교회 몇 명의 장로님들과 권사님, 집사님들과 함께    모스크바 선교지와 유럽 몇 나라를 방문 한 일이 있었다. 당시 우리교회가 지원하던 모스코바 신학교에 들렸다가 상뜨 뻬체르부르그(St. pertsburg)를 경유하여 동유럽의 중심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도착한 것이 6월 5일이었다. 문학과 예술의 고장, 오래도록 음악과 영화와 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어온 낭만의 고장에 첫 발을 디딜 때부터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기억이 난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와 있던 현지 가이드와 만나게 되었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의 사나이가 마이크를 들고 “서울 후암교회에서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고 하더니 “사실 저는 한국에서 장관급 이상 주요 인사가 방문할 때 안내를 맡아 동시통역을 하는 정도로 비중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국의 모처에서 손상률 목사가 그곳에 가니 잘 모셔야 된다는 압력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자기의 신분은 밝히지 않았으나 내가 부산 남부민중앙교회에서 목회한 것과 또 얼마 전까지 고위층의 측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가정이나 주변의 사정까지 소상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친구가 1박 2일 동안 친절하게 안내 하면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주기도 했다.

이튿날 오전 시내 관광을 하던 중 일행은 일천 사백 년이나 되었다는 스데반 교회를 둘려보게 하고 그 사람과 나는 잠시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서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며칠 전 여행사로부터 서울에서 오는 관광 팀을 케어 하라는 요청을 받고 인터넷으로 후암교회를 검색하던 중 그 교회 담임 목사인 나를 대번에 알아보았고 들뜬 기분에 우리를 안내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박승현(朴勝鉉)은 내가 부산 있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의 형이 있었는데 당시 고신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대원에 다니던 중 남부민중앙교회 교육전도사로 있어서 나와 함께 사역한일이 있다. 그때 나는 교회 옆에 붙어있는 아주 작은 방 하나를 그들 형제가 쓰도록 해 주었는데 형편이 어려웠던 이들 형제는 그렇게라도 배려해 준 것이 너무나 고맙게 생각되었더라고 했다.

며칠 전 경남 진주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수요일 예배 설교를 한 적이 있다.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승남 목사는 몇 년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다가 진주에 있는 그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고 귀국하여 5년째 담임하고 있었다. 80년이 넘는 역사에 장로님이 여덟 분이나 되고 교회당과 교육관이 완비되어 있으며 우리교회와 비슷한 규모의 교인들이 모이는 전통적인 교회였다. 지금 40대 초반의 젊은 목사가 부임하여 굳어있는 교회의 체질을 개선하고 비전 있는 목회로 도약하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3년 전 비엔나에 있는 동생으로부터 나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연락을 하게 되었단다. 그 사람과 헤어진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한참 젊었을 때니까 부교역자들에게 매우 엄하게 다스렸고 그들은 담임목사 밑에서 힘든 시집살이를 했을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지난날의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해외 생활도 했고 담임목사로 목회를 관장하는 입장이 되고부터는 그 당시의 사역과 훈련이 목회자의 기본과 소양을 갖추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도 했다. 세상사가 다 비슷하지만 특히 목회자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들, 곧 인간관계야 말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