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4.29 14:54:31
1991

존경할 대상이 없다면

     어느 때 노회에서 장로 고시가 있었다. 9명이나 되는 장로 후보생들이 그 노회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응시자 모두가 교회의 이름만큼이나  시험  성적이 좋았다는 평을 들었다. 나는 고시를 마친 사람 아홉 명 전원을 데리고 수양관으로 올라가 마음에 다짐을 하는 기도회를 가졌다. 그런데 다음날 노회 고시부 서기로부터 응시자 가운데 한사람이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떨어진 사람의 시험 답안지에는 모든 과목이 평균 90점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면접에서 떨어뜨렸다는 것은 의도적이 아니냐?고 항의를 했다. 고시부장의 대답은 이렇다. “필답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상대로 면접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겸손한 태도와 진솔한 마음으로 시험관들의 물음에 대답을 하여 합격이 되었지만 유독 그 사람은 태도가 틀렸더라”고 했다.

내용인즉 “교회에서 존경할만한 장로가 누구인지 말해보라”고 질문을 했는데 그는 즉각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고시부원 중 한사람이 “아니 당신교회에 장로가 20여 명이나 되는 줄 아는데 그중에 존경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한 사람도 없습니다”하고 단언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고시부원들은 하나같이 자기교회의 선배 장로를 아무도 존경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보나 마나한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린 것이다. 밖에서 볼 때는 그 교회 장로들 중 그래도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인 경륜으로 보아 지명도가 높고 존경 받는 분들이 많은 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 당회의 추천을 받아서 장로 고시에 응시한 사람이 선배들을 한마디로 매도해 버리는 것을 보고 모든 고시부원들이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동안 과거사를 정리 한답시고 지난날의 사건들을 파헤치며 관계된 사람들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있다. 한 세기 전후로 격동기를 거쳐 오는 동안 숱한 어려움 속에서 나름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바지 한 사람들의 이름을 익히 알고 존경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지난 역사의 기록을 뒤엎으면서 오늘의 시각과 잣대를 가지고 선인들의 업적을 폄하하고 단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참으로 국민이 당혹해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라고 본다.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볼 때 마냥 잘한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도 개인적인 허물도 있고 실수도 저지를 수 있는 법. 지금 와서 선인들의 자취를 들추고 평가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가 그 시대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지 않는가?

 개인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라도 존경할 대상을 가지지 못하였다면 이것이야 말로 매우 불행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자식이 낳고 길러준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것이나, 제자가 저를 가르쳐준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것과, 후배들이 선배를 존경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비극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와 사회 할 것 없이 오늘의 번영과 문화적 이기를 누리면서도 마땅히 존경해야 될 분들을 무시하고 외면해 버린다면 앞으로의 희망을 찾기란 요원할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해 버리는 불행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