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7.04.22 14: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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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결혼식

           요즈음 세상에는 “결혼식 공해”라는 말이 있다. 한 쌍의 젊은이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결혼예식이야 말로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진심어린 축하를 받으며 축복 속에 이루어져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일부 인사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신성해야 될 결혼문화가 이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결혼의 기본적인 가치를 망각한 채 부모들의 자존심 대결로 얼룩진다든지, 분수에 넘치는 혼수와 예단, 허례허식으로 치러지는 행사, 신혼여행, 자기 과시형의 낭비성 소비문화 등 정말 고쳐야할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나도 자식들을 결혼시킨 사람이고 또 교회 안팎의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축하해야 할 결혼식이 많이 있다. 요즈음 웬만한 결혼식장은 주말의 황금시간대에 여러 사람이 몰려 있어서 큰 혼잡을 빚기 일쑤이고 예식 또한 진지함이나 엄숙함 보다는 요식행위처럼 치러지곤 한다. 일생을 통하여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해야 될 신랑 신부나 가족들마저 가슴에 와 닿는 감동도 느끼지 못한 채 정신없이 스쳐 보내고 만다. 하객들도 여기 저기 겹치기로 쫓아다니며 혼주에게 눈도장 찍기와 축의금 전달하는 것으로 결혼식의 축하를 대신하곤 한다.

지난 4월 7일 안동 재활원에서 치러진 정하연군과 김혜진양의 결혼식은 근래에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결혼식이었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만큼 감동적이었다. 신랑은 미국(UCLA)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한 청년이고 신부는 프랑스에 있는 파리 6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신랑의 아버지는 태국 방콕에 있는 외국인 회사 사장(CEO)으로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해왔다. 내외분이 그곳에 있는 한인교회에 장로와 권사로 봉사하면서 각종 선교사역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모범적인 크리스챤이다.

한편 신부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미얀마 정부의 요청으로 그곳에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고 국가 기관의 중요 인사들에게 정신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분이다. 사돈되는 두 집이 다 경건한 신앙인이며 명망 있는 분들이다. 이들이 편리하고 좋은 도시의 예식장을 마다하고 산간벽지에 있는 재활원에 가서 결혼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부터 특이하다고 여겨졌다. 두 분이 의논 하여 청첩장을 돌리지 않기로 했고 또 참석하는 손님들에게서 축의금도 받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애경사에 초청을 하는 것도 상호간 품앗이가 되어야 하는데 두 분 모두 20년 이상씩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친척과 친구들에게 청첩을 하기에는 체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날 예식을 재활원에서 하게 된 이유도 신랑과 신부가 신체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재활원 식구들 속에 들어가서 저희들이 가지는 희망적인 축복의 잔치를 그들과 함께 나누고자 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의 생각과 달리 거기 오셔서 성의껏 주고 가는 축의금은 사양하지 말고 받아서 그곳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도서와 비품을 기증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97세의 고령이신 방지일 목사님의 주례로 간결하게 거행되었는데 식이 끝난 후 아래층의 넓은 연회장에서 하객들과 함께 피로연을 가졌다. 잔치 상에는 그곳 재활원 식구들이 푸짐하게 장만한 음식이 있었고 그 지방 풍물인 안동식혜도 후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날 결혼식에는 안동 사람들뿐 아니라 대구와 부산 그리고 서울에서도 많은 분들이 참석했는데 여느 결혼식처럼 인사치례로 왔다가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토요일 오후 바쁜 시간인데도 느긋하게 앉아서 음식을 같이 먹으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참관하였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신랑신부나 가족들이 손님들과 함께하는 축제에 의미를 두었다. 결혼식 사진도 신랑신부나 가족들만 찍지 않고 오찬을 끝낸 후 넓은 잔디밭에서 모든 하객들과 함께 촬영을 하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진심어린 축하가 있는 결혼식, 축복의 말씀이 있는 결혼식, 나눔이 있는 결혼식, 기쁨을 같이하는 결혼식, 소박함 가운데 밝은 웃음이 가득한 결혼식, 화창한 봄 따사로운 날씨만큼이나 밝고 여유로움을 느끼는 결혼식이었기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