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6.11.19 23: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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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 개량은 되었지만…


다른 사람의 신체적 조건이나 약점을 가지고 조크를 하거나 농담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그렇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자기에게 직접 해당되는 일일 경우 양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외모가 빼어나고 신체적인 조건이 좋게 타고난 사람은 아무래도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복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신체조건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릴 때의 내 모습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여덟 살 때의 사진이 있는데 거기도 보면 작은 키에 몸은 뚱뚱하고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어 한눈에 봐도 못생긴 표가 들어난다. 그때는 몸 전체에 비하여 머리가 너무 크다고 대갈장군이라는 별명도 듣곤 하였다. 앉은키는 작은 편이 아니지만 상체에 비해서 하체가 짧은데다가 팔과 다리는 짜리몽땅하며 구조적으로 키가 클 수 없는 체질인 것이다. 결혼을 한 후에도 잘생겼다는 말은 당연히 들어 본적도 없었지만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세상 넓은 줄만 알았는지 어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는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부터 하나같이 애비의 유전자 때문에 모두다 팔다리는 짧고 굵은데다 궁둥이까지 튀어나와 두고두고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 넷이 다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시집을 보낼 딸들보다 맞아드릴 며느리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우리 집 식구들이야 이왕 틀린 몸매이지만 혹시 며느리라도 키 크고 잘생긴 아이가 들어오면 종자개량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심산이었으니까.

마침 우리교회 어느 장로님이 자기고향 교회에 좋은 처녀가 있는데 며느리로 삼을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아내와 의논하고 아들을 설득해서 맞선을 보게 되었는데 처녀 집에서는 좋다는 반응이 왔으나 아들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도 아들 편을 들고 나왔고…. 나는 처음부터 사돈되는 집이 선대부터 신앙 있는 집안이어야 된다는 것과 키가 큰 처녀이어야 된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처녀는 그 조건에 딱 맞은 것이다. 그때부터 집요하게 가족을 설득시켜 결국 결혼을 성사시켰다. 일 년 후에 낳은 첫아이는 딸이었다. 내 관심은 먼저 아이의 팔다리 길이가 어떠한 가에 쏠렸고 생김새는 그 다음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첫 아이는 성공작이었다. 물론 제 새끼이니까 그렇겠지만 얼굴도 예쁘고 하는 것도 귀여웠고 무엇보다 팔다리의 길이가 쭉 빠져 늘씬하게 키가 컸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는 모두 종자개량 하나는 확실하게 이루어졌다고 좋아했다. 지금 미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이 아이는 팔과 다리가 젓가락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할 만큼 길고 유연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전혀 생각지 못한 사건이 터졌다. 나와 아내는 둘 다 혈액형이 O형으로 아이들도 모두 똑 같은 혈통이다. O형인 사람은 다혈질이며,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하고, 다정다감하다는 등 혈액형에 따르는 성격분석도 하지만 나는 그런데는 별 관심이 없고, 다만 수혈을 할 경우 O형은 아무에게서나 받을 수는 없어도 자기 피는 누구에게든지 줄 수 있다고 알기 때문에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 가서 손주 둘이 각각 A형과 B형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며늘아기의 하는 말이 제가 AB형이기 때문에 우생학적으로 2세들은 당연히 A형과 B형이 맞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제 가문의 영광이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충격을 느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얘야! 네가 와서 우리집안 종자개량 하라고했지 언제 혈통까지 바꾸라고 했더냐?”는 말로 푸념만 하고 말았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