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06.11.12 23: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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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서 정든다고 하더니

 

지금은 넓은 집에 아내와 둘이 살고 있지만 작년 이맘때는 여섯 식구가 북적거리며 지냈다. 막내 사 위가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며 일 년 반 가까이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복잡하고 귀찮기도 하여 어서가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딸 내외와 사내아이 둘이 딸려 있어서 식구도 우리보다 배나 되었지만 여섯 살과 네 살 되는 두형제가 집안을 운동장처럼 놀이터로 만드는가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만만한 친구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낮에 어린이집에서 조금씩 잠을 재운 탓인지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거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설치고 다녔다. 그중에도 큰놈은 내가 새벽기도 갔다 오면 어김없이 소파에 앉아서 TV를 켜놓고 제가 좋아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나는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나서 아침 종합뉴스를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손자 녀석이 TV를 독점하고는 양보할 줄을 모른다. 저희 방에 있는 TV는 위성채널이 없기 때문에 저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안 나온다며 꼭 거실에 나와서 나의 TV 시청을 방해하곤 하는 것이다. 매번 내가 많은 양보를 하지만 더러는 저가 시큰둥해 하며 물러날 때도 있었다.

금년 3월초 딸네 식구가 모두 오사카로 이사를 간 다음 그곳의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느라 어지간히 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이니 우선은 어린것들의 마음고생이 더욱 컸을 줄 안다. 이따금 전화를 하면 큰놈이 받아가지고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하고 인사를 하는데 여기 있을 때 보다는 훨씬 친절하고 공손해 진 것처럼 느껴진다. 저의 어미 말에 이 녀석이 이따금씩 “엄마, 우리가 후암동에 살 때 참 좋았지. 그때는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보았는데” 그리고는 “후암동서 텔레비전 서로 보려고 할아버지와 많이 싸웠다! 내가 할아버지를 골탕 먹였지”하고 무용담을 늘어놓듯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그곳으로 이사 간지 벌써 8개월이나 되었다. 여기 있을 때는 교회에서나 어린이집에서 쌍둥이처럼 두형제가 기죽지 않고 밝게 자랐는데 그곳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원래 일본 아이들에게 이지매 근성이 있어서 저보다 약하게 보이는 아이를 왕따 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아이들도 처음 유치원에 가서 그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말이 안통하고 생소한 문화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단체생활에 밀어 넣었으니 그리 할만도 했을 것이다. 작은아이는 오줌 마렵다는 말을 못해서 그냥 옷에다 오줌을 누게 되면 그래도 선생님이 친절하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주었단다. 큰아이는 저보다 덩치큰놈이 매일같이 집적이며 괴롭혔는데 한 달 이상 시달리며 울고 다녔다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괴롭힘을 당하던 큰아이는 그 아이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여 코피를 내어버렸단다. 여기 있을 때부터 태권도 사범인 아빠에게서 기본동작을 훈련받았기에 그 실력이 발휘된 것이다. 하지만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엄마가 가서 사과를 하고 선생님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도 하고 왔단다.

한편 진이는 그 일로 인해서 저희 반을 완전히 평정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 서로 진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앞을 다툰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본말도 제법하고 친구들과 거부감 없이 잘 지내는가하면 얼마 전 유치원 운동회 때는 달리기와 개인경기를 석권했다고 한다. 흔히 손자는 “오면 좋고 가면 더 좋고”라지만 그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자주 눈앞에 아른거린다. 엄마와 둘러앉아 아침저녁 기도회와 가정예배 드리는 모습의 사진을 보면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우리 집에 있을 때 같으면 내가 하자고 해도 “할아버지쯤이야!”하고 뺑소니 쳤을 것이 분명했던 녀석들인데…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