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열왕기상 22:48
솔로몬의 배들은 안전하게 돌아왔지만 여호사밧의 배들은 결국 금이 나는 땅 오빌에 가지 못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소원이 좌절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통치자 되시는 우리 하나님은 양쪽 모두에 대해 선하고 지혜롭게 섭리하십니다. 이 본문을 기억하면서 일시적인 축복을 받은 배들뿐 아니라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한 배들을 인해서도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보다 더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가 무언가 상실했을 때도 마치 우리만 특별한 시련을 당하는 것처럼 원망하지 맙시다. 여호사밧처럼 비록 우리가 계획했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소중한 존재들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사밧이 왜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 속내막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내막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많은 고통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이 이런 낭패를 당하게 된 것은 그가 심히 죄악된 가정과 교제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즉 죄인들과 교제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0 : 37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는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 이것은 아버지로서 아들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징계가 결국에 가서는 여호사밧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 본문 바로 다음 구절을 더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자기 종들이 여호사밧의 종들과 함께 같은 배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여호사밧 왕이 거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징계 때문에 여호사밧이 이렇게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징계로 축복을 받은 셈입니다. 여호사밧의 이 체험은 곧 여호와의 나머지 백성들에게 불신자들과는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경고일 수 있습니다. 비참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한번 보십시오. 대체로 자기 자신이 선택해서 세상 사람과 결혼을 했든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세상 사람과 연합한 결과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우리도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거짓이 없고, 순결하여, 죄인들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