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창세기 41:4


저는 바로의 꿈에 관한 이 글을 읽을 때면 정신이 번쩍 날 때가 많습니다. 혹시 나태하고 게으르게 지내느라 그 동안 열심히 근면하게 일하며 성취한 모든 것들을 황폐하게 만들어 놓지는 않았는지. 냉랭하고 무심하게 지낸 날들로 인해 진지하게 열심으로 지낼 때 타오르던 그 모든 따스한 열기들을 싸늘하게 식히지는 않았는지. 이 세상을 본받아 사느라 내 안에 있던 새 생명이 더 자라지 못하고 뒤로 처진 것은 아닌지. 아! 그 동안 파리한 기도, 파리한 찬양, 파리한 의무, 파리한 체험을 조심했어야 하는 건데. 이것들이 결국 나의 살진 안락과 평화를 잡아먹고 말텐데. 만일 한순간이라도 기도를 등한히 한다면 그 동안 쌓아 온 나의 모든 영성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천국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양식을 매일 공급받지 않는다면, 내 영혼이 심한 기근으로 곳간에 쌓여 있는 곡식들을 다 먹어치울 것입니다. 무관심이라는 애벌레, 세속이라는 자벌레, 방종이라는 유충이 내 마음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고 내 영혼을 시들게 한다면, 이전에 내가 은혜 안에서 맺은 그 모든 열매들과 성장이 아무 소용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파리한 날과 흉악한 시간들을 갖지 않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내가 매일 소원하는 목표를 향해 계속 걸어간다면 나는 곧 그 목표에 닿을 것입니다. 그러나 뒤로 후퇴하는 날이면 위로부터 부르신 부름의 상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요 그 동안 열심히 수고해서 이룬 그 진보를 다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나의 모든 날들이 “살진 소”처럼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을 좋은 초원에서 먹이되, 늘 주님과 동행하며 그를 섬기고 그를 경외하는 가운데 그의 도(道) 안에서 그와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새 해를 맞이할 때마다 그 전 해보다 더 풍성한 사랑과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더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국 언덕에 더 가까이 왔으며 주님을 더 많이 체험했으니 주를 더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 주님, 제 영혼이 파리해지지 않도록, 파리해지는 저주로부터 저 멀리 떼어 놓아 주소서. 그래서 제가 “화 있을진저 내 파리한 영혼아, 내 파리한 영혼아!”라고 부르짖는 일이 없도록, 그 대신 주의 집에서 잘 먹을 뿐 아니라 잘 양육받아 주의 이름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