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마태복음 27:14
사람의 아들들을 축복하실 때는 한번도 말을 더디 하신 적이 없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과 같이 말한 사람이 없었으며.” 그와 같이 침묵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침묵 한 가지만 보아도 주님이 얼마나 자기 희생적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침묵은 곧 그 거룩하신 몸(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신)이 죽음당하는 것을 견디기 위해서라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위해 추호도 중재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말없이 묶인 채 아무 불평 없이 희생 제물로 죽음당할 만큼 전적으로 자신을 복종시켰다는 뜻 아닙니까? 이 침묵은 무방비 상태인 죄의 상징이 아닐까요? 인간의 죄에 대해서는 변명하거나 핑계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죄를 모두 짊어지신 주님께서는 재판관 앞에서 말없이 서 계셨습니다. 이처럼 오래 참는 침묵이 반박하는 세상에 대한 최선의 응답이 아니었을까요?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참고 견디는 것이 거창한 웅변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답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사의 초창기 때 기독교를 가장 훌륭하게 대변한 변증론자들은 바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망치로 아무리 두드려도 모루가 그 강타를 조용히 참아내면 오히려 망치가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도 대답지 않고 서 계신 하나님의 어린양, 그분이 우리에게 큰 지혜의 모범을 보여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말끝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가 나오는 곳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 죄의 불길에 기름만 붓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애매모호하고 거짓되며 비열하고 무가치한 사람들이 머지않아 입을 다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할 때는 침묵하십시오. 그러면 곧 침묵이 지혜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침묵하심으로써 놀라운 예언의 성취를 이루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자신을 길게 변호하셨다면 그것은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에 상반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주님은 입을 열지 않고 잠잠히 계심으로써 자신이 참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이런 주님께 이 아침에 경의를 표합니다.
예수님, 저희와 함께 계시며 저희가 마음의 침묵 속에서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