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예람지기 2012.02.29 03: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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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예레미야 31:3


율법이 주는 위협이나 심판에 대한 공포,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마침내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예수님의 탕자 비유를 보십시오. 그 탕자는 필요 의식에서 자기 아버지 집을 향해 출발하지만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그의 아버지는 저 멀리서부터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즉시 달려 나옵니다. 가서 아들을 얼싸안고 두 뺨에 입맞추며 환영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 아들은 두 뺨에 여전히 따뜻한 아버지의 입맞춤과 그를 환영하는 풍악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 집에 도착합니다.



“율법과 공포는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할 뿐

그 마음을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한다오.

그러나 주님이 흘리신 보혈로

용서받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때는 돌 같은 마음도 녹아 내린다오.”



하룻밤은 주님이 어느 집 문에 오시어 율법이라는 철 손으로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그러자 돌쩌귀 위에서 문이 덜컹덜컹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집 사람은 집안에 있는 가구라는 가구는 모두 가져다 그 문앞에 쌓아 놓으며 “나는 이 사람이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할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되돌아가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통 못자국이 난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그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얼마나 부드럽게 살살 두드리시던지 이번에는 문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문이 열리며 지난번에 주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 집 주인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주님이 그렇게 두드리시니 제 마음이 동했습니다. 주님의 못자국 난 손으로 저희 집 대문에 핏자국만 내고 들어가실 집이 없어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아 5:2)고 말씀하시며 그냥 돌아가실 생각을 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항복합니다. 제가 항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제 마음이 녹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경우든 인자함이 이깁니다. 모세가 돌비를 갖고도 절대 할 수 없었던 일, 그 일을 그리스도는 그의 못자국 난 손을 갖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유효한 부르심이라는 교리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실제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주가 나를 주께로 끌어당기시고 나는 그 소리를 주님의 음성이라 기꺼이 고백하며 계속 그의 뒤를 따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주께서 여러분을 마침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때까지 계속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