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수치, 그 죄로 인한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인위적인 노력으로 결코 그들의 수치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이 기사는 지극히 상징적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결코 죄악의 수치와 정죄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기 수양과 선한 행위는 곧 말라 버리는 ‘나뭇잎 치마’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죄악의 수치에서 벗어나려면 ‘피 흘린 짐승의 가죽’이 있어야 합니다. 피 흘린 짐승의 가죽은 바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진정으로 우리의 죄를 청산해 주며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줍니다. 이 때문에 그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으면 결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무슨 선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의로움을 얻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과오를 범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죄의 수치를 덮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증거되지 않는 기독교는 헛된 종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젖어있지 아니한 제단은 흠향(歆饗)하지 아니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흠향하시는 제단은 예수님의 보혈이 흠뻑 젖어있는 제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단을 통해 인간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죄의 수치를 가리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윤리와 도덕, 종교나 철학도 죄로 물든 우리의 양심을 눈보다 더 희게, 양털보다 더 희게 맑혀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유일한 자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날마다 감사하고 찬양하며 증거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