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는 한국 교회의 시련기였습니다. 당시에 깊은 산중의 마을에서는 목사님 한 분이 열 교회에서 스무 교회를 담임하면서 순회 목회를 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은 1년에 목사님을 1회 정도 만날까 말까 하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을 지켜나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부족해서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 오다 나라치라는 목사님은 이런 산촌을 주로 돌아 다니면서 순회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는 자주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불쌍한 한국 백성들을 기억해 주세요. 도시에는 많은 목사님들이 있지만 이곳 산골에는 목사님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을 위해 목사님을 보내 주소서.” 농촌이나 산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어렵습니다. 누가 알아 주지도 않고 충분한 사례비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다 나라치 목사님은 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을 귀한 축복으로 알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오다 나라치 목사님은 하루에 세 끼를 다 먹는 날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주 알밤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설교를 하고 심방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고 선한 양심으로 주님의 일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