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1.06.26 14:32:14
2007

 

 


숙성된 인간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단에는 일정기간 숙성을 시켜서 먹는 발효식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 식품인 김치는 간을 절인 채소에 고춧가루와 양념을 섞어서 땅속에 묻어두고 숙성을 시킨다. 메주를 띠워 만드는 된장 고추장 간장이 그렇고 생선을 소금에 절인다음 양념을 넣어 익혀서 먹는 젓갈류도 다 그런 유형의 식품들이다. 채소와 콩, 생선같은 것을 선택할 때는 싱싱하고 제 색깔을 지닌 최상품을 사용하지만 그것들이 숙성 기간을 거치면서 본래의 성질은 없어지고 전혀 다른 형체로 바뀐 다음 드디어 제 맛을 내게 되는 것이다.

참나무 조각으로 지붕을 덮은 너와집이라는 것이 있다. 사대부 들이나 고관대작의 경우 고래등같은 기와집에 살았기 때문에 기와지붕이 품위와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알고 보면 너와집은 선비의 기상처럼 기와나 다른 집보다는 훨씬 더 높은 품격과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한다. 참나무를 가로 20-30cm, 세로 30-40cm, 두께 4-5cm 크기로 잘라서 땅속에 깊이 파고 1년 이상 묻어둔다. 이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치면서 나무 안에 있는 독성은 빠져 나가고 강한 성질이 삭아져 나무의 결이 부드러워지게 된다. 이렇게 발효시킨 나무가 질기고 오래 가기 때문에 ‘기와는 백 년, 너와는 천 년’이라는 말이 맞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도 숙성이 되어야 발효식품처럼 제 맛을 낼 수 있다. 뛰어난 두뇌와 많이 배운 지식, 남다른 기술과 재능, 독특한 개성으로 무엇이나 밀어붙이고 성취할 수 있다는 의욕도 좋지만 그런 것만으로 인생의 성공을 논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제일의 금강송으로 제작했다는 광화문의 헌판도 숙성 기간이 짧아서 금이 가고 갈라졌던 것이다. 지혜자 솔로몬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한 말씀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이다(잠 16:32). 분노를 삭이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정도라면 오랜 기간 숙성과정을 거쳐서 인격이 발효된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