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1.06.19 14:31:38
1967

 


큰 슬픔, 작은 위로


 
  지난 14일은 고 김명환 목사가 우리 곁을 떠나간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너무나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가족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우자의 죽음이나 부모, 형제 또는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자식을 잃을 부모의 비통함은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을 것이다.

 

  고 김명환 목사는 2005년 1월에 우리 교회에 부임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5년 동안 부목사로 충성스럽게 사역해 왔다. 작년 2월 췌장암 판정을 받고 4개월에 이르는 투병 기간에 온 교인이 그의 회복을 위하여 릴레이 기도를 하며 애를 태웠다. 김목사는 나의 큰 아들과 신학대학원 동기생이며 같은 해 목사가 되었다. 나는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김목사의 부모님이 겪는 아픈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나와 아내 그리고 부교역자들과 직원 몇 명이 청도에 있는 김목사 본가에 갔다. 기다리고 있던 장로님과 권사님이 우리를 보자 껴안고 울음보를 터뜨리는데 참으로 숙연하고 민망한 심정이었다. 그분들에게 지난 1년은 너무나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었던 것 같다. 집에 있을 때나 논밭에 나가서 일을 할 때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치밀어 오르면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권사님이 가슴을 치는 것은 임종이 가까워 오자 죽음과 싸우는 아들의 처절한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어려서 즐겨먹던 음식이라도 엄마 손으로 먹여서 보냈다면 덜 원통하겠다는 말도 했다. 안타까운 모정의 순수한 마음일 것이다. 두 분이 다 성품이 좋고 신앙이 깊었지만 아들을 보낸 후 한동안은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교회에 나갈 마음이 없어지더라는 말도 했다. 김목사의 마지막 설교가 실린 만세반석 작년 여름호를 가져다 드렸더니 생생한 그의 사진을 보면서 아들이 대견스럽고 행복한 목사였다는 말을 했다. 많은 교인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과 이처럼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와 주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고맙다는 말도 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우리는 김목사와 같이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