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10.05.02 13: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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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사랑
 
   1979년 7월 1일 주일 아침. 중고등부 청소년 20여명을 태운 교회버스가 건널목에서 기차에 받혀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차 안에 있던 아이들은 밖으로 튕겨나가 논바닥에 뒹굴고 길옆에 서 있던 어떤 남자는 넘어가는 버스에 치어 숨지고 말았다. 졸지에 일어난 이 재난은 나의 목회 인생을 주저앉힐 뻔하게 했고, 또 시골의 작은 교회를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 잔인하고 힘겨운 격랑을 헤치면서 그해 연말이 되었을 때는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교인들의 힘겨운 헌금으로 버스를 사고 번호판을 단지 열흘 만에 일어난 사고로 사람이 죽고, 여러 명의 학생들이 중상을 입어 손해배상과 치료비 등 교회은 엄청난 상처와 경제적 부채까지 안게 되었다. 거기다 사고버스는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 그대로 정비공장에 주어버렸다. 교인들 입에서는 공연히 버스를 샀다가 이 엄청난 재난을 치렀으니 앞으로 어떻게 뒷감당을 할 것인가 여론이 분분하고 마음이 이완되기 시작했다.
 

   나는 교회의 중직자들(장로 3인, 안수집 2인)과 마주앉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고 입을 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모두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한참 만에 무거운 침묵을 깨고 어느 장로가 “어떻게 하겠어요. 또 시작 해야지요”라고 말했다. “뭘 어떻게 시작 하자는 건데요?” 하고 물었다. “이럴 때일수록 목사님이 힘을 내셔야지요. 우리는 모두 목사님만 쳐다보고 여기까지 왔는데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 하겠다면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여기 있는 우리들이 각출해서 시작합시다”고 했더니 모두 그리하자고 했다. 나부터 50만원을 내겠다고 했더니 모두 다 마음을 모아 그 자리에서 300만원을 작정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교회 강단 밑에 엎드려 많이 울었다. “하나님 오늘 이 장면은 그대로 사진에 담아 두십시오” 하면서 마음을 강하게 다졌다. 그리고 다음날 신흥여객 회사에 가서 400만원 주고 중고 버스를 또 사왔다. 지금 경남 창원에 대표적인 교회가 된 서머나 교회는 이와 같은 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일어선 모델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나와 머리를 맞대었던 그분들. 비록 학식이나 인물은 변변치 못했지만 목사를 인정하고 말없이 따라 주었던 참 믿음직한 사람들이다. 극심한 고통과 환난의 시기였지만 이처럼 신뢰와 사랑으로 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행복했던 것 같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