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예람지기 2010.04.25 13: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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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에 끓여 먹는 라면의 맛

 

 
부산에 어느 곳에서는 요강에다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텐으로 만든 요강을 시뻘건 화덕 불에 올려놓고 거기에 라면을 끓여 여러 명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으며 즐기는 모습이 TV화면에 소개되었다. 기자가 “라면은 냄비에다 끓이는 것이 정석인데 하필 요강에다 끓여 먹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요강에 끓인 라면이 맛이 더 있을 리도 없지만 그 사람들의 성격이 유별나거나 좀 괴짜 기질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의 말은 “냄비에 끓이면 물이 부르르 끓을 때 넘치지만 요강은 그렇지 않고, 냄비보다 빨리 식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요강 뚜껑에 담아먹는 라면의 면발은 맛이 죽여 준다”고 했다. 그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았으나 그런 것은 이유를 만들다 보니 하는 말이고 실제로는 요강에 대한 나름대로의 향수 때문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요즘 사람은 요강을 민속촌이나 골동품 진열장에서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어떤 데 쓰이는 물건이냐고 물으면 사전을 찾아봐야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외국인 친구와 함께 전통 시장의 골목을 구경하다가 어느 가게에서 요강이 진열된 것을 보았다. 그 서양 사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용기에 뚜껑이 덮여있는 요강을 보더니 거기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것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화장실 문화가 다른 서양 사람에게 옛날 우리나라의 통시깐 문화나 그중에도 방안에서 용변을 볼 때 사용되었던 요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생각하던 끝에 ‘어항’이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이런 어항은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기어이 사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는 것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문화적 정서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또 한편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오히려 이런 것에 실증을 느끼기도 한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에 어쩔 수 없이 겪었던 일들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때 그 열악한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만들어 낸 문화가 지금은 자랑(?)거리가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