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06.02.12 00:00:00
1022
  • 일자
    2006-02-12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마태복음 17:1~8
 
인간은 시간이나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임의대로 조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들은 광채 나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옆에 서 있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고 빛난 구름 속에서 나오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황홀한 광경에 감동을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하고 제안하였습니다(4절). 그는 한순간 천당의 모습을 실감하였고, 거기에 매료되어 그곳에서 언제까지나 그대로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눈을 떴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곳을 둘러싸고 있던 구름도 없어졌고 모세와 엘리야도 보이지 않았으며 예수님마저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8절에는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생을 통하여 은혜로운 시간이나 감격적인 체험이 반복되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교차하기도 하고(전 7:14), 환상적인 낙원의 체험이 있는가 하면 숨 막히는 지옥의 고통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성도의 삶은 오직 예수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합니다. 제자들처럼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 앞에 서 계시고 그의 나아가는 길의 목표이며 삶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I. 성경계시의 내용이 예수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비롯하여 저명한 유대인 랍비들은 구약의 율법서나 예언서를 통달하면서 거기에 계시된 예수님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우맹이요 소경들”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3:17).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와 고난, 그리고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고전 15:3-4).

(1) 성경의 주제가 예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요 5:39).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창 3:15).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경계시로 통하여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시대의 역사와 인물과 사건들을 취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인 표현들입니다. 성경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교훈들로서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이 그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도리를 믿지 못할 때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으로 그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27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2) 구약과 신약의 관계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의미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데 곧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여기 예수님의 변화된 현장에 모세와 엘리야 같이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이 예수님과 함께 한 것은 그들이 모두 예수님의 사역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곧 역사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이 명시하였고,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해설하였으며, 신약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과 구약은 별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상호보완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서 예수님을 암시하고 있지만 신약은 그 예언의 성취된 사실을 명시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기 대하여 예레미야는 구약을 옛 언약(Old testament)라 하고 신약을 새 언약(New testament)라고 하였습니다(렘 31:31).

(3) 복음의 핵심이 예수입니다.

어느 때에나 기독교의 복음 선교에 있어서 그 주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이나 신약, 또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도자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물론 시대나 환경에 따라서 복음을 수용해야 될 대상이나 그들의 의식구조와 욕구성향이 다양하였지만 전도(κηρνγμα)의 핵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롬 1:1-4).
오순절에 성령 받은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설교하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행 4:12).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7-8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고 하였습니다.


Ⅱ. 영적 체험의 내용도 예수입니다.

구약의 호세아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호 6:3). 하나님의 백성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도리를 배우고 익히 알면서도 신앙의 깊은 체험이 없을 때 자주 흔들리고 넘어집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신비로운 체험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굳건히 하게 하십니다(요 20:27).

(1) 변화산의 체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는 성도가 그침 없는 시험과 역경에 시달리며 힘들어 할 때 간혹 천당에 대한 체험으로 확신과 용기를 갖게 하고 승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여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서 신비로운 천당의 실체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일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셋째 하늘에까지 올라가 본 체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2:2). 그는 그곳을 낙원이라고 말했습니다(고후 12:4). 그때 자기는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눈과 귀로써 보고 듣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성령으로 신령한 눈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주셔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다양한 은사와 체험들

신앙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체험들을 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은혜롭고 형통한 경우도 있지만 괴롭고 힘든 고비도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행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를 힘입어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보호를 받기도 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등 감격적인 일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는 시련과 수난을 받으면서 급기야는 하나님의 징벌로 멸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후세에 거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교훈을 주었습니다(고후 10:6-1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실 때 여러 가지 체험을 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산상보훈처럼 은혜로운 말씀으로 천국시민의 소양을 기르게 하셨고(마 5:1-12),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하여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을 알게 하셨으며(요 6:51),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므로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주셨습니다(마 8:26). 그 외에도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부활과 생명의 주님 되심을 증거 하셨습니다(요 11:25).
여기 변화산에서의 은혜로운 체험도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하고 믿음을 든든히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3) 이상과 현실

변화산 위에서 본 환상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살고 싶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황홀한 감동의 장면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지속될 줄 착각했던 것입니다. 지금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이나 집에 있는 처자식과 가족들의 생각까지 다 잊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감격은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렸고 다시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정확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을 인식하면서 자기의 본분과 사명을 수행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신비로운 환상의 체험 때문에 자기의 현실과 한계를 망각해 버린다면 오히려 더 큰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다만 잠시 잠간이지만 천당의 실체를 맛보았기에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더욱 매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체험한 셋째 하늘의 환상 때문에 자기의 본분을 망각한 채 교만해질까 두려워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육체 속에 찌르는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두었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2:7).


Ⅲ. 삶의 목표가 오직 예수입니다.

히브리서 12:2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목적 있는 인생을 사는 자입니다. 마치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사람이 그 정한 목표를 향하여 달리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목표로 삼고 거기에 이르도록 매진하는 사람입니다(고전 9:26).

(1) 유일한 목표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는 유일성(唯一性)과 불변성(不變性)과 영원성(永遠性)을 지닙니다.
예수님만이 길과 진리와 생명의 유일한 목표요 변하지 않는 영원한 목표가 됩니다. 마태복음 6:24에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유일한 목표여야 됩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도 의지도 감정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 되는 유일한 분입니다(계 22:13).

(2) 최고의 가치가 됩니다.

마태복음 13:44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숨겨진 보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 예수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때 유대주의적 가치관에 따라 문벌이나 학벌 또는 세상적인 조건들을 내세우며 거기 도취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한 후 이전에 좋아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붙들기 위해서 매진한다고 하였습니다(빌 3:8).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예수를 위하여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들은 오직 예수에게 자기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모세의 경우 애굽에서 공주의 아들이라는 존귀한 신분과 그곳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포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능욕이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한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히 11:24-26).

(3) 예수가 자기 인생의 전부라는 사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서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넘겨준 사람입니다. 그는 돈에 눈이 어두워 선생을 팔고도 그 돈만 있으면 성공적으로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를 유대인들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는 그 돈을 성소에 던져 버리고 자신은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마 27:3-5). 한편 세리장 삭개오는 돈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다음 있는 재물을 내어 놓았습니다(눅 19:8). 곧 예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는 자입니다(롬 14:7-8).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생업에 힘쓰며 자기 일에 진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예수를 알고 그의 일에 동참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빼놓고는 어떤 것으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가 아닌 그 어떤 것도 자기 인생의 목적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빌 3:7-8). 이와 같은 삶이 “오직 예수”를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